정부가 국내 PE들의 토토 바카라를 못하게 막으면 이들이 기업 인수에 활용할 수 있는 금융기법이 하나 사라지게 되고, 결국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외국계 PE와 경쟁하기 어려워진다.
이 경우 국내 주요 기업이 M&A시장에 매물로 나왔을 때 외국계 자본에 넘어가게 될 위험이 커진다. 이에 따라 PE의 토토 바카라 방식 기업인수를 ‘타율규제’가 아닌 ‘자율규제’ 형식으로 만드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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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장이 MBK의 홈플러스 인수 방식이었던 차입매수(토토 바카라) 관련 제도개선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업계에선 토토 바카라를 규제하는 것이 답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토토 바카라는 기업 인수합병(M&A)에서 자본이 부족할 경우 인수 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한 차입금으로 조달하는 방식이다. 이후 해당 기업의 현금흐름으로 차입금을 상환하는 구조다.
토토 바카라 거래에서는 전체 인수자금 중 60~70% 가량을 부채로 조달하는 것이 흔하다. 해당 기업을 인수한 사모펀드(PE) 등 새 주주는 일정 기간(통상 3~5년) 이 기업을 운영한 후, 기업가치를 높여서 재매각하거나 기업공개(IPO)로 투자수익을 실현하는 게 목표다.
예컨대 MBK파트너스는 지난 2015년 약 6조원(부채 제외)을 들여 홈플러스를 인수했는데, 이 중 약 50%에 이르는 약 2조7000억원을 홈플러스 명의로 대출받아서 자금을 마련했다.
이같은 부채 중심의 인수는 PE가 소규모 자본으로 대형 기업을 인수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인수대금 마련을 위해 일으킨 차입금의 이자가 손비(손해에 해당하는 비용)로 인정돼서 법인세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이밖에도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치 제고와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 효율화를 이룰 수 있다.
또한 PE는 피인수 회사에서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하기도 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만약 불경기에 피인수 회사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한계기업으로 분류돼서 기업회생(워크아웃) 대상 기업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PE는 영업이익을 늘리기 위해 임금·복지 축소, 희망퇴직, 정리해고 등을 단행하는 경우가 있다.
이밖에도 새 주주가 인수대금 상환을 위해 피인수 기업의 자산(주식)을 담보로 제공하므로 회사 경영진이 배임죄(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임무를 위반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손해를 입히는 범죄)가 될 수도 있다.
토토 바카라 방식에 대해 금융 당국의 감독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1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토토 바카라는 M&A 자금조달 방식으로 많이 쓰이지만, 이번 계기로 여러 문제점이 제기됐다”며 “여러 사례와 외국 제도 등을 보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검토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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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업계에선 토토 바카라를 규제하는 것이 답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정부가 국내 PE들의 토토 바카라를 못하게 막으면 이들이 기업인수에 활용할 수 있는 주요 금융기법이 하나 사라지게 되고, 그 결과 외국계 PE와 경쟁하기 어려워진다.
예컨대 현재 SK에코플랜트의 환경 부문 자회사 리뉴어스·리뉴원에 대한 인수전이 진행되고 있다. SK에코플랜트가 원하는 매각가는 2조원 이상이며, 부채를 제외하고 인수에 필요한 자기자본은 1조2000억~1조5000억원 이상으로 전해졌다.
또한 효성이 매물로 내놓은 타이어 스틸 코드 사업부문은 매각 예상가가 1조원대 규모로 추산된다. 국내 대기업 중에는 인수 희망자가 없다. 코오롱이 유사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았고, 스틱 외에 중국 전략적투자자(SI)와 베인앤캐피탈 등이 경쟁하고 있다.
PE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 중에는 조 단위 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며 “국내 주요 기업이 M&A시장에 매물로 나왔을 때 토토 바카라 규제 여파로 국내 대기업 또는 국내 PE가 해당 매물을 소화하지 못하면 외국계 또는 중국계 자본에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M&A 시장에서 PE만 규제할 경우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전 토토 바카라회 상임위원이었던 김용재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MBK의 홈플러스 기업회생 사태긴급 토론회’에서 이같은 견해를 밝혔다.
김 교수는 “대부분 M&A에서는 인수 주체와 관계없이 인수가액의 최소 50% 이상을 외부 인수금융으로 조달하고 있다”며 “인수인이 컨소시엄을 구성할 때 특수목적법인(SPC) 등 기타 투자수단을 설립해 인수하는 사례도 많아서, 외형상 PE가 인수 주체인 경우와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인수 주체가 PE인 경우 뿐만 아니라 PE가 아닌 경우에도 동일하게 규제해야 형평성에 맞는다”며 “이 경우 M&A 시장 자체가 크게 위축될 것이고 M&A의 장점을 구현하지 못하는 중대한 문제점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해당 토론회 자료에 따르면 이런 부작용에 대한 대안으로, PE의 토토 바카라 방식 기업인수를 ‘타율규제’가 아닌 ‘자율규제’ 형식으로 만드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예컨대 △사모펀드 운용사(GP)의 보수를 지나치게 투자 회수에만 연계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사모펀드 체계에서의 여과 장치 설정 △GP 등록시 최초 등록 서류에 명확한 계획을 반영하고 이를 공시하도록 함으로써 GP를 간접적으로 통제하는 방안 등이 있다.
김 교수는 “PE에 대한 규제로 M&A 자체가 위축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대안이 여럿 있다”며 “PE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GP 등록 갱신에서 탈락시키는 방안 등을 강구해서 자율규제를 강화하되, PE는 가급적 그 취지에 맞게 법령상으로 규제를 강제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가 있다”고 말했다.